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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방산 도요지 지표조사 楊口方山陶窯址地表調査

  • 번호9779
  • 조회253
  • 등록일2022.02.16
  • 기간 : 2000-05-01 ~ 2000-11-01
  • 조사부서 : 학예실

위치: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장평리, 칠전리, 현리, 송현리, 금악리, 오미리, 상무룡리 / 시대: 조선시대


양구방산은 조선시대 『世宗實錄地理誌』(세종실록지리지)나 『朝鮮王朝實錄』(조선왕조실록), 『新增東國輿地勝覽』(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기록 등에서 도자기 생산지 외에 백토생산지로 기록될만큼 양질의 백토를 생산하던 곳으로 조선말기 분원리 가마의 상품백자의 원료 생산지로 기록되었다. 양구군 방산면 일대는 수입천水入川의 관통으로 요업이 필요한 물을 구하기 쉽고 수목이 무성하며 백토가 산출되어 요장을 운영하기가 좋은 지역이며 백토는 수동강 水同江가 수입천의 합류지점인 반구뫼에서 수로를 이용하여 경기도 분원까지 운송이 용이하다.
도토와 각지역 가마출토품과의 성분분석을 통하여 고려 말에서 조서 초까지는 가마터는 달라도 모두 같은 도석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 통제에 의하여 제작하였던것임을 알 수 있고 ‘예빈시’명 그릇이나 고려말의 이성계 발원문을 담은 백자의 제작이 그 예이다. 

방산지역은 1910년 일제 통치하에 들어가면서 전통적인 생산방식대신 근대적인 제작방식으로 제작하게 되었다. 1913년 ‘도자기개량조합陶磁器改良組合’이 창립되어 근대적인 사기그릇으로 전통식기인 조질백자와 일본풍 청화백자만 만들었다. 수습된 요도구와 가마폐기물 퇴적은 14~15세기의 가마는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원주형도침 圓柱形陶枕과 점토를 덧바른 가마벽편들이 수습되고, 조선중기이후에는 원형의 경사진 도침류와 백토를 덧바른 가마벽편이 발견된다. 조선후기에는 원주형 도침 외에 백토로 만든 제기접시형 도침과, 톱니형도침도 발견되며 방산일대에서 갑발은 발견되지 않는다.


참고문헌
1. 梨花女子大學校博物館, 『楊口 方山의 陶窯址 地表調査報告書』,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양구군, 2001. 2


조사기간
2000. 5. 9-2000. 5. 28
2000. 6. 25-2000. 6. 28
2000. 11. 4-2000. 11. 7


보고서: 비매품